성찰의 디자인, 야나기 소리
아마도 디앤디파트먼트가 소개하는 상품들 가운데 가장 많은 종류의 상품을 디자인한 사람을 꼽는다면 바로 야나기 소리(柳宗理)일 겁니다. 일본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지요. 그런데 우리 나라와는 좀 더 특별한 인연이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나기 소리의 아버지는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던 식민기의 우리 일상 용품들을 수집, 분석해 한국 공예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광화문 해체를 막은 일본인(노컷뉴스 기사 참조)”으로도 이름이 알려진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 한국 내에서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은 듯 합니다만, 미술 디자인 평론가 임근준 님의 ‘야나기 무네요시’전 리뷰 글을 통해 그 대강을 알 수 있습니다.
야나기 소리는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산업디자이너이기도 했지만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민예관의 기틀을 잡아가며 평생을 보냈습니다. 그런 민예운동의 자취는 그의 디자인 하나하나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야나기 소리는 평소 디자인을 할 때 먼저 그림을 그리지 않고 여러 차례 모델링(실제 물건의 형태를 만들어 시험해보는 일) 작업을 거쳐 사용해본 후 형태를 완성하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가 디자인한 주전자와 커틀러리 등 도구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남다른 라인과 면이 서로 만나 균형을 이루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모델링을 거듭하며 다듬어진 특별한 기능미를 후라이팬의 뚜껑 닫힘이나 주전자 뚜껑의 증기 배출구와 같은 사소한 부분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야나기 소리 디자인의 스테인리스 스틸 주방용품
디앤디파트먼트에서는 야나기 소리가 디자인하고 수십년간 스테디셀러로 사랑받아온 주전자와 냄비, 믹싱볼과 펀칭 스트레이너, 집게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야나기 소리가 디자인한 스테인리스 스틸 상품들은 니가타현 츠바메시에 위치한 제조업체에서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생산됩니다.
각각의 상품들마다 야나기 소리가 의도한 몇 가지 지점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상품 몇 점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곡선형 디자인의 “뜨거움을 느끼지 않게 하는 주전자”
야나기 소리의 주방용품으로는 최초로 출시되었던 상품입니다. 완만한 곡선의 형상은 “뜨거움을 느끼게 하지 않는 외형”을 목표로 2년여의 기간에 걸쳐 개발되었는데, 이제 그의 주방용품 시리즈 전체를 견인하고 있는 스테디 셀러가 되었습니다.
인덕션 히터에 대응하도록 하단면이 처리된 이 주전자는 바닥이 넓어 가열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고, 뚜껑이 매우 커 차 도구를 넣어 사용하거나 세척하기가 매우 쉽습니다. 또한 입체 모델링을 거듭한 디자인의 손잡이는 비스듬히 기울어진 형태로 손목을 많이 굽히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내용물을 따를 수 있습니다.
기존 냄비에서 진화된 “요리를 빠르게 만드는 냄비”
왼손잡이나 오른손잡이 누구에게도 어렵지 않도록 디자인한 양쪽의 주둥이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됩니다. 양쪽의 주둥이는 원형의 상부에 위치하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냄비와 같은 윤곽선을 지닌 뚜껑을 회전시키면서 틈새를 조절하거나 내용물 가운데 액체만을 흘려버리기 매우 쉽고, 때로는 국물이 끓어 넘치는 정도를 정밀하게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입체적인 곡선을 지닌 손잡이는 뜨거워지지 않고 깨졌을 때는 교체 수리가 가능합니다.
“요리의 용도에 맞춰 디자인한 믹싱볼과 펀칭 스트레이너”
요리 연구가들의 요청을 받아 용도에 맞춰 디자인한 믹싱볼입니다. 19센티미터 이하 모델의 경우 테이블에 두고 쓸 수 있도록 바닥이 납작하며 23센티미커 모델의 경우엔 뒤섞기에 적합하도록 둥근 모양으로, 27센티미터 모델은 샐러드를 담기에 적합하도록 낮은 형태의 디자인으로 개발되었습니다. 가장자리는 말아 넣어 사용시 편안히 쓸 수 있습니다.
펀칭볼의 망사 처리는 매우 단단하게 처리되어 청결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중앙 부분의 아랫면은 약간 튀어나오도록 처리되어 바닥에 놓일 경우 물빠짐이 좋습니다. 믹싱볼과 겹치면 일정한 두께의 틈이 생겨 탈수 등의 작업에 용이합니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지만 상품 하나 하나마다 야나기 소리 특유의 진지함이 묻어 나오는 듯 합니다. 실로, 기능성을 내세우는 디자인은 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과물의 형태와 이리도 조화를 이루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어려운 말보다도 실제로 사용하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디자인이 그의 특징입니다. 민예 운동과 디앤디파트먼트 사이의 뗄 수 없는 관계처럼, 그가 디자인한 생활용품은 어쩌면 여러 상품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충실하게 디앤디파트먼트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상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