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news 3 한국어번역
나가오카 켄메이 책임 편집.
“오랫동안 계속되는 좋은 것”을 소개하는 신문을 창간했습니다.
소통하는 여러분들과 함께 만들고 전해가는 계간지 입니다.
http://www.d-department.com/jp/d-news
실물은 일본어 표기만인데, 한국에서 롱 라이프 디자인에 관심있는 여러분에게도 알리기 위해 일부를 번역하고 여기에서 보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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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ZUOKA 静岡
자연과 채소를 사랑하는 농부이자 활동가
후지산 기슭에 사는 특별한 부부
후지노미야시 키타야마(富士宮市北山)에서 유기농 채소를 기르는 히라가키(平垣)씨 부부의 키타야마 농원(北山農園).
광대한 부지에서 시장에서는 좀처럼 구할 수 없는 희귀한 채소와 형형 색색의 채소를 기르고 있습니다.
우리 D&D SHIZUOKA와 히라가키씨 부부 (우리는 ‘킹’과 ‘오크’라고 부릅니다)는 D&D SHIZUOKA의 오픈 때부터 약 8년동안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전직 사진가였던 히라가키씨 부부는 농업 기술을 따로 배우지 않고 독학으로 책을 읽으며 채소와 밭에 얽힌 식물과 동물, 농업 지식을 조금씩 익혀 지금까지 농업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수확량과 수익만을 위해 채소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종이나 밭, 모종의 상태를 판별하고 그 채소가 잘 자라기=살기 위해서는 생산자인 자신들이 어떤 지원을 해야할 지 고민하는 것이 바로 키타야마 농원의 생각. 자신들의 감각(감)을 믿고 만든 채소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리한다. 꾸준히. 그리고 재미있게.
함께 활동을 하며 느끼는 것은 물건을 만들어내는 일, 또한 살아가는 일에 이렇게까지 일관된 사람들, 기분 좋게 느껴지는 사람들은 정말 드물다는 것.
그런 히라가키 씨 부부가 채소와 함께 하는 인생을 걷게 된 계기는 홈 센터에서 만난 한 마리의 토끼때문이었습니다. 토끼에게 주기 위해 당근잎을 찾았지만 시중에는 나와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통 당근은 잎은 모두 잘라내고 우리가 평소 먹는 오렌지색 뿌리 부분만을 출하하고 있으며, 잎 부분은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토끼의 주인으로서, 전국에 우리처럼 당근잎을 원하는 주인들이 많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구할 수 없다면 스스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모두가 기뻐할만 한 맛있는 채소를 만들자라고 결심합니다.
마침 그 때는 카메라 세계 역시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뀌려하고 있었던 시대.
스튜디오를 계속할 수 있을 지 고민하고 있었던 차에, 그 기세를 몰아 사진가를 그만두고 2006년 후지노미야에서 밭을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처음에는 토끼 전문 채소로 시작된 유기농 채소재배가, 서서히 그 면적이 늘어나 10년 지난 지금은 연간 50품목 · 200상품 이상의 유기농채소를 재배할 정도로 확대되었습니다.
키타야마 농원의 채소를 구하기 위해 시즈오카 현내에서는 물론, 도쿄에서도 자주 찾아오는 요리사도 있을 정도라고.우리도 지금까지 여러 번 후지노미야의 키타야마 농원에 가서 일손을 돕고 있습니다.
킹과 오크 외에도 토끼 ‘우즈라토상(메추라기 아버지)’, 개 ‘텐텐’, 고양이 ‘토라(호랑이)’도 키타야마 농원의 중요한 존재들입니다. 밭일을 도우러 가면, 텐텐도 함께 밭일에 힘을 보태줍니다.봄에는 파종이나 모종 심기, 여름에는 오이와 가지의 수확, 가을에는 땅콩과 고구마를 캐고 겨울에는 삽으로 우엉 캐기를 돕습니다.
두 분에게 듣는 밭에 대한 이야기, 인근 마을 산에 대한 이야기, 벌레와 야생화에 대한 이야기, 산나물과 버섯 따기에 대한 이야기.
농사일뿐만 아니라 우리가 평소 좀처럼 신경 쓰지 못하는 것, 자연과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왜 채소를 기르는가? 등을 진지하고 뜨겁게 이야기 해 주십니다.
그들에게서 배울 것은 정말 많습니다.”당연하게 여기지만 흙과 햇빛이 있고, 바람이 불고, 비나 눈이 내립니다.
그때 그때의 환경에 따라 씨앗이 스스로 싹을 트고 뿌리를 내리고 나뭇 가지와 잎을 뻗어 갑니다. 우리가 약간의 도움을 줌으로써 각각이 힘차게 자라죠.
채소들의 그 살아가는 에너지를 느껴보길 바래요. 우리 모두가 그 하나 하나를 먹으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거에요.” 라고 말하는 오크.
평소 이런 배움의 기회를 d직원들만 경험하는 것은 너무 아깝다고 느껴, 두 분을 강사로 초빙해 d SCHOOL (‘알기 쉬운 씨’, ‘키타야마 농원을 먹는 모임’)과 파머즈 마켓을 D&D SHIZUOKA에서 정기적으로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말, 킹과 오크로부터 “내년에는 밭을 이용해 함께 재미있고 즐거운 기획을 해볼까?”라는 제안을 받아, 무려 키타야마 농원의 밭 일부를 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7년은 일년 내내 그 밭에서 d SCHOOL를 개최해 나가기로.
그 이름하여, d SCHOOL ‘d&FARM in 키타야마 농원’!
참가자 분들과 봄 여름 가을 겨울 1년 내내 d&FARM에서 씨 심기, 모종 심기, 가지치기와 수확 작업 등 다양한 농사를 체험할 예정입니다.
우리 D&D SHIZUOKA 직원들도 쉬는 날을 이용해 d&FARM 관리를 할 예정입니다.
또한 d SCHOOL과 병행하여 D&D SHIZUOKA 다이닝에서 키타야마 농원의 채소를 이용한 런치 메뉴의 날을 만들거나, 채소박스 판매도 계획하고 있으니 기대해 주세요. 우리들이 참가하여 기른 채소를 우리 가게에서 우리 손님들에게 대접한다… 알기 쉬운 음식의 흐름의 첫 걸음을 키타야마 농원과 진행하고 있습니다. d SCHOOL ‘d&FARM in 키타야마농원’은 3월 18일(토)에 제1회를 개최합니다.
글: 소에지마 마도카 Madoka Soejima (D&DEPARTMENT SHIZUOKA)
키타야마 농원(北山農園) 3192 Kitayama Fujinomiya-shi Shizuoka 일출부터 일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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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CHIGI 栃木
향수를 찾아서
남겨야 할 것이란
마시코야키(益子焼: 마시코 지역의 도자기)에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1, 지역의 특유의 흙과 돌
2, 옛날부터 계속된 장비 및 도구
3, 숙련된 기술, 독자적인 기법
세 가지의 공통점은 하루아침에는 얻을 수 없는 것, 오래 시간에 걸쳐 계승되어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거쳐 축적되어 온 것 역시 보다 저렴하고 손쉽고 안정적인 것이 나타나면 쉽게 교체되고는 합니다.
앞서 든 사례들은 앞으로 점점 감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전통을 지킨다’라는 말이 사용됩니다만, 그 의미는 단순히 기존의 물건을 계속 만든다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와 함께 만드는 물건 역시 변해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변하지 않는 것, 남겨야 하는 것은 어디며 무엇인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취재를 시도했습니다.
다이세이요(大誠窯)를 방문
다이세이요는 1861년부터 시작되어 현재 6대째 오오츠카 쿠니노리 씨와 7대째 세이이치 씨에게 계승되어 온 명문 도자기 제조소입니다.
이번에는 세이이치 씨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이세이요에는 큰 노보리가마(登窯:산비탈에 계단 모양으로 만든 도자리 굽는 가마)가 있어, 연 2회의 주기로 불을 때고 있습니다.
전에는 마시코에 큰 노보리가마 여러 개 있어 자주 불을 땠었지만, 현재 이 정도 규모의 노보리가마를 가동시키고있는 곳은 다이세이요뿐입니다.
노보리가마의 존재감은 압도적입니다.
하나 하나 쌓인 벽돌, 가마 내부를 덮는 유리화 된 재,
정교하게 쌓인 장작 창고, 가마 정면에 만들어진 신단.
가마 주위에 사람이 없어도,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가고 그들이 일하는 모습이 떠오르는 것만 같습니다.
석유나 가스 가마는 경제성, 안정성이 뛰어나 불을 땔 때의 수고도 크게 줄어들었지만,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오오츠카 세이이치 씨의 안내로 작업장에 가보니 먼저 그 넓이에 놀랐습니다.
촉촉하게 젖은 토방, 장작 스토브에서 나오는 그을음으로 검게 변한 천장,
반투명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외광, 한쪽 벽면에 물건이 진열된 선반.
세이치 씨의 어린 시절에는, 작업장에서 많은 장인들과 이웃 아줌마들이 일하고 있었고, 자주 같이 놀아 주었다고 합니다.
현재 작업장에는 아버지와 아들 두 명과 젊은 장인이 한 명, 가게에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있습니다.
가족이 운영하는 가내 수공업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세이치 씨는 발물레로 그릇을 성형합니다.
자신의 발로 물레를 차면서 그릇을 만드는 데는 전동 물레보다 높은 기술과 경험을 필요로 합니다. 일찍이 마시코의 많은 가마에는 발물레에 능숙한 장인들이 많이 있었지만,
전동물레와 기계물레의 보급과 함께 사라져 버렸습니다.
일곱 세대의 마음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장인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세이이치씨는 어른이 되면 나도 여기서 일하게 되는 걸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춘기가 되어 자아가 싹 틀 무렵에는 대를 잇는 것에 망설임도 있었다고 하지만, 미술 대학을 졸업한 후 단바 야키(丹波焼;교토 중부와 효고 중동부를 생산지로 한 도자기)의 시바타 마사아키(柴田雅章)씨의 밑에서 4년간의 수행을 쌓고 가족에게 돌아 왔습니다.
아버지 쿠니노리씨는 세이이치씨에게 후계자가 될 것을 강요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세이이치씨에게도 한 살짜리 아들이 있지만, 마찬가지로 본인의 의지에 맡길 생각입니다.
세이이치씨에게는 다이세이요의 후계자로서, 마시코의 전통의 이끌어 가는 사람로서의 특별한 사명감은 없다고 합니다.
지금은 자신의 눈앞의 일에 집중하고, 언젠가 노력한 결과가 다이세이요의 존속과 마시코야키에 대한 기여로 연결되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세이이치씨가 최근 작품을 보여주었습니다. 점토는 원토를 직접 정제하여 만들고, 유약은 근처에서 채취하는 흙과 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수행하던 시절 자주 오사카에 있는 일본민예관(日本民藝館)의 전시 작업을 도우며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나라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를 많이 보고 접한 경험을 통해, 좋은 것은 그 땅에서 필연적으로 태어난 것이라고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이이치씨가 만드는 그릇은 소박하고 야성미가 있으며, 씩씩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건 그 자체가 아니라
다이세이요가 다른 도자기 제조소와 다른 점은 원료 및 장비를 바꾸지 않았던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경영에 있어 마이너스라고 여겨지는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결국 다른 제조소와의 차별화로 연결되어 팬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옛날의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이 과연 뛰어난 지 어떤 지, 물건만을 보면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기술이 개발 됨으로써 뛰어난 것이 태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CAD나 3D 프린터를 이용한 제품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향수를 느낄 있는가
가족과 장인, 이웃 사람들이 오가는 다이세이요에는 향수를 느끼게 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경제 효율을 우선한 일이나 생활은 인간의 노동 의욕과 인간 관계를 바꿔 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들이 활기차게 일하고, 가족의 단란함이 있는 곳에서 탄생하는 것은 자연 그대로 아름답고 말하면, 조금 종교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예론적인 느낌도 듭니다.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에 향수를 느끼는 나는 구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키워드는 3 세대
결국 남겨야 할 것은 세대를 초월해 계승된 것으로, 거기에는 사람이 영위하는 흔적이 있고, 일하는 태도와 생활 방식이 전달되는 것이라고 이번 취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마시코야키의 전통 계승은 대대로 계승되는 제조소뿐만 아니라 현재 도자기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우리와 연관된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판매하는 가게의 직원들과 그것을 애용하는 고객의 문제이기도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3세대에 걸쳐 계속되는 일하는 태도,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을까요?
항상 그것을 인식하고, 계속 묻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생활 속에서 탄생하는 것과 습관을 소중히 한다. 단순하지만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글: 스즈키 미노루 Minoru Suzuki (도자기 공방 works & products 대표)
다이세이요(大誠窯) 92 Jonai Mashiko-cho Haga-gun Tochigi 9:00-17:00 화요일휴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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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OTO 京都
젊은 목욕탕 경영자 미나토 산지로(湊三次郎) 씨. 오래 지속하는 목욕탕은 교토로부터 시작됩니다.2015년에 발간한 ‘d design travel KYOTO’. 그 지역의 키 맨(key man)으로 거론한 인물 ‘사우나 우메유(サウナの梅湯,이하:’우메유’)’의 미나토 산지로 씨, 그는 일본에서 가장 젊은 목욕탕 경영자이다.
그 미나토 씨가 최근 Twitter에서 ‘역대 최고의 객수 235명!’라고 쓴 글을 보고, ‘우메유’에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메이지 시대 부터 계속되어 온 ‘우메유’, 실은 폐업 위기에 직면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당시의 경영자가 ‘우메유’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 미나토 씨에게 연락을 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목욕탕을 남기고 싶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하게 느낀 미나토씨는 회사를 퇴직하고 2015년 5월에 물려받는 형태로 ‘우메유’를 리뉴얼 오픈했습니다. 미나토 씨가 물려받기 전 ‘우메유’의 평균 객수는 60명, 한 달에 1500명 미만. 그것이 현재는 3000명으로 2배가 늘었다고 하니 놀랍습니다.객층은 신규 고객이 30 % (그중 외국인 관광객이 10 %), 오히려 새로운 단골 손님이 늘고 있고, 미나토 씨 왈 “우메유에 와주는 손님의 97 %는 집에 욕조가 있는 사람이다”라고.
많은 사람들이 우메유에 가는 것을 기대하고 있고, 젊은 목욕탕 경영자인 미나토 씨를 응원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느껴졌습니다.물려받는 전에 비해 객수가 늘고 있는 이유를 물어보자 “운이 좋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목욕탕에 관해서는 터무니 운이 좋더라고요”라고 태평하게 웃는다. 나는 그 대답을 들으며, 확실히 그럴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미나토 씨의 주위에는 ‘돕는 사람’ 이라고 부르는 10명의 남녀 직원 (모두 20대)가 있는데, TV나 잡지 등을 보고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 최근에야 아르바이트 급료를 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때까지 완전한 자원봉사자로 일해주었다고 한다.
‘무급이라도 좋으니 우메유를 돕고 싶다’는 의욕적인 젊은이들이 그가 있는 곳으로 모이고 있다. 그야말로 운이 좋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단, 물론 좋은 운만으로는 목욕탕 경영이 잘 될 리 없다. 미나토 씨가 객수를 늘린 큰 이유는 좋은 운에 더해, 커뮤니케이션을 소중히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나토 씨에게 목욕탕의 디자인에 대해 물었을 때 ‘오히려 디자인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요금소 주위에 손님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거나 카운터를 만든 것도 어떻게 하면 더욱 손님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을 지 생각한 결과입니다’ 라고 말하기 때문.
덧붙여, 목욕탕 외에 미나토 씨가 좋아하는 장소는 헌옷 가게로, 우메유는 미나토 씨가 가 본 목욕탕과 헌옷 가게 중에서 여러 번 다시 가고 싶어지는 곳을 상상하며 만들었다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예요. 여러 번 다시 가고 싶어지는 곳이라는 구조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거기에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에 가는 겁니다”라고.
객수를 늘려 일주일에 한 번 주기로 다양한 매체에 거론되고 있는 우메유지만, 전혀 현재에 만족하고 있지 않은 듯했다.
오히려 경영자로서의 어려움, 목욕탕 자체의 미래가 위기감을 더해 가고 있다고 강하게 느꼈다.
“목욕탕에 감으로써 목욕탕을 남긴다는 것은 이제 무리예요. 물론 그러한 사람들이 없으면 계속할 수 없지만, 그 이상으로 운영 상 드는 비용의 액수가 다릅니다. 그리고 후계자가 없다는 것.
결국 돈과 사람의 문제이지요. 때문에 젊은 사람들은 밖에서 응원만 할 게 아니라 이 세계 안으로 들어와주면 좋겠어요. 안으로 들어 오면 전혀 다른 바람이 불 거라 생각해요.
내가 안으로 들어와 조금이나마 바뀐 것 처럼. 나만으로 멈추고 싶지 않단말이죠 ······· ”
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우메유를 계승한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비전도 지금은 분명해 졌고 “기회가 된다면 우메유는 돕는 사람에게 맡기고 두 번째 목욕탕을 하고 싶어요. 우메유를 남기고 싶다기 보다는 일본의 목욕탕을 남기고 싶고,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는 비정상적인 집착밖에 없네요”라고 미나토 씨는 강하게 말했다.마지막으로 향후에 대해 물었다.
내년은 지역과 함께하는 활동을 늘리고 싶다는 생각이며, ‘복지’ 분야에서의 행정과의 협력,
예를 들어 혼자 목욕을 할 수없는 분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나 노숙자가 들어갈 수있는 목욕탕이 되고 싶다고.
미나토 씨는 “현실적으로는 꽤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만, 그런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목욕탕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공중 목욕탕이란 그러한 사람들을 받아주는 곳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장소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목욕탕의 존재 의의가 지금보다 더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했다.또 내년에는 우메유뿐만 아니라 온욕 컨설턴트라는 슈퍼 목욕탕, 여관의 대욕장에 대해서도 어드바이스를 할 수 있는 실무 지식을 쌓을 생각이며,
지금보다 더 실력을 쌓은 후 두 번째, 세 번째 목욕탕을 재생하는 비전을 그리고 있다.
언젠가 목욕탕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될 지도 모르는 남자가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니, 나는 몹시 두근거렸다.
글: 오바라 류키 Ryuki Obara (D&DEPARTMENT KYOTO)
사우나 우메유(サウナの梅湯) 175 Iwataki-cho Shimokyo-ku Kyoto-shi Kyoto 15:30-23:00(토일한정 아침목욕6:30-12:00) 목요일휴무
번역: 사토 아키라 Akira Sato, 김송이(D&DEPARTMENT SEOUL)